최근 들어 이틀이 멀다하고 대학교수의 비리가 줄지어 보도되고 있다. 대부분 돈과 연루된 사건이다. 그 놈의 돈이 ‘교수’고 뭐고, ‘스승’이고 뭐고, ‘선생’이고 뭐고 학생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하기야 돈이 문제겠는가. 사람이 문제이지. 옛 교수, 선생, 스승의 사회적 의미는 지금과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대접을 받은 이유가 돈에 관한한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자제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통역관이자 시인, 학자였던 이언진(1740∼1766)은 양반이 아니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 27세에 요절했다. 높은 학식을 지녔음에도 뜻을 펴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 그의 스승인 이용휴(1708∼1782)가 서찰을 보내 그를 위로한 글이 마음에 새겨진다. ‘벼슬에 올라 일품에 이르더라도 아침에 거두어 가면 저녁에는 백수요, 돈을 모아 만금에 이르더라도 밤새 잃으면 아침에는 거지인 것을. 하지만 학식은 그렇지 않아 한번 가진 다음에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소유네. 자네는 이미 그를 가졌으니 나머지 구구한 것은 모두 사양하여 내치고 가슴에 담아두지 말게’. 권력과 재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학자라는 것을 제자에게 일깨우는 글이다. 요즘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스승이 몇 분이나 될지는 모르겠다.

또한 공자(孔子)가 어느 날 제자인 자로(子路)가 옆에 있는 줄 모르고 생각 없어 “배고프다”는 말을 했다. 그는 스승이 제자 앞에서 지켜야 할 어떤 사이를 스승 자신이 침범했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 도학(道學)의 시조인 김굉필(金宏弼)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정성스럽게 말리던 중 고양이가 굴비를 물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옆에 제자 조광조(趙光祖)가 있는 줄도 모르고 화를 내며 고양이를 꾸짖었다. 조광조는 성색을 드러낸 스승의 잘못을 직언했고, 김굉필도 제자에게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사과했을 정도로 스승은 교육적으로 그릇된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법도였다.

과거 사표가 됐던 스승들은 예외 없이 사표가 될 법도를 행동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훌륭한 스승아래서 훌륭한 제자들이 무수히 나올 수 있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스승 노릇하기가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또한 조선 선조 15년(1582년) 율곡 이이는 왕명으로 학생수양 지침서인 ‘학교모범’을 저술한다. 그 내용 중에는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는 안 되고, 스승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며, 웃을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 된다. 혹, 스승과 겸상을 해 밥을 먹을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 스승에 대하는 태도를 가르침이 매우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없는데 행동으로만 한다고 존경스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존경하는 척 할 뿐이다. 지금 한국의 교수와 박사과정이나, 석사과정 대학원생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글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중국보다는 상당히 늦다. 원래 ‘스승’의 어원은 사승(師承)에서 시작된다. ‘사’의 중국발음이 ‘스’인 점에 미루어 그렇다고 동언교락(東言巧略)에서 적고 있다. 가르쳐 이끌어주는 사람의 총칭이다. 조선시대에는 주(州)나 부(府) 같은 큰 고을 향교 스승을 교수(敎授)라 해 종6품에 봉했고, 군(郡)과 현(縣)에서는 훈도(訓導·종9품)라 불렀다. 시골 향촌 서당 스승은 훈장이라 했으며 아무런 벼슬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같이 스승을 품계로 구분지은 것은 교수가 일반 스승과는 달리 학식이 인정된 학자로서의 예우였다.

영국에서도 빅토리아왕조시대부터 선생에 대한 호칭이 있었는데, ‘사람 사이를 잡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inte-taker’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 전통의 스승관인 사제 간에 간격을 유지하는 것을 스승의 첫째 조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스승에 대한 권위가 땅에 떨어졌지만,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법도였다. 즉, 사제지간에는 그림자조차 밟지 말아야 하는 어떤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법도가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학칙(學則)에는 길에서 스승을 만날 때 행동요령이 적혀 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 있어야 하고 말을 타고 가거든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스승에 대한 예를 갖추는 자체가 매우 엄격했다. 이랬던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권위는 온 데 간 데 없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발에 차이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됐다. 그야말로 ‘inter-destroyer’ 현상이 벌어지면서 선생님에 대한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교권회복은 회복불능 상태로 빠져든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교수, 선생님들이 ‘좋은 선생님은 잘 가르치고, 훌륭한 선생님은 스스로 해 보이며, 위대한 선생님은 제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는 앨프리드 화이트헤드의 글을 함께 떠올려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