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총장직선제 폐지명분 중에 가장 자신 있게 내놓는 카드가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지고, 교수사회에 파벌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주장하는 그런 쓰잘 데 없는 총장직선제는 1987년 12월 목포대를 필두로, 88년 5월 전남대, 1991년 7월 서울대가 총장직선제로 뽑는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러니 시행 25년 만에 막을 내린 셈이다.

당시 총장직선제 채택은 군사 독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옮아가는 시기에 군사정권 시절에 간섭과 통제를 종용했던 대학운영을 대학 스스로가, 운영의 총괄자 총장도 직접 구성원이 선출한다는 뚜렷한 대의적 명분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 때, 대학 구성원들은 마음이 들떴다. 교수들 마음 한편에는 “잘 해 봐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 연구하는 일, 학생들과 소통하고 “니들 세상을 나가면 이래야 된다”는 인생 선배로서 혹은 형뻘로서, 애정 어린 마음을 학교에 더 썼다. 왜 그랬는지는 그 이유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선거는 순기능이 정착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민주주의 모델 국가이며 현재 공명선거 모범국가인 영국 사례 이를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통치 아래 7개 바다를 지배하는 대영국제국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국력에 반해 정치는 이에 상응하는 발전을 보이지 못했다. 선거에서는 각종 부패와 타락상이 만연했다. 투표 날이면 보수·자유 양당은 술로, 돈으로 유권자들을 매수해 ‘돈 살포’ 유일한 선거의 전략이었을 때가 있었다.

1880년 선거에서는 부패추방을 공약으로 내건 자유당이 승리하여 글래드스턴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선거에서 오히려 자유당이 더 많은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선거 직후 왕립조사위원회가 발간한 '부정선거백서'에는 “지성의 전당이던 옥스퍼드대학 선거구에서도 선거 부패는 예외가 아니었다. 양당 모두 대학가 술집(pub)들을 빌려서 '당(黨)위원회'란 간판을 걸었다. 학식 있는 유권자들도 여기로 모셔 와서 술을 대접하고 '봉투'를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어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그 당시 선거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대학 자정노력 안착될 때까지 더 인내했어야

그러나 이 선거를 계기로 영국 선거 문화는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글래드스턴 정부가 제정한 '부패방지법'(1883)과 유권자들의 자성 및 자정 운동이 공명선거에 큰 기여를 한다. 이후 영국에서 선거재판은 점차 감소했고, 지금은 '선거법 위반'이란 말은 사라졌다. 만약 19세기 말 영국에 크롬웰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해 과열과 부패를 이유로 선거와 의회를 없앴다면, 영국을 두고 선거 민주주의의 모델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었을까? 영국에서 선거 민주주의가 안착되는데 걸린 시간은 100년이 걸렸다.

대학에 총장 직선제를 뚜렷한 명분이 주어져 시작 했다면 자정 노력이 정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주었어야 한다. 물론 교과부의 폐지 명분대로 대학교 총장을 교직원이 선출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어느 선진국에서 대학 총장을 교직원들이 선거로 뽑느냐는 것이다. 교수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 국립대학들은 왜 그렇게 총장 직선을 고수하려 하는가? 그건 교과부가 국립대학에 대해 너무 폭압적이기 때문이다.

언론을 상대로는 '대학 자율'을 내세우지만 실상 교과부는 여전히 국립대학 위에 갑을관계로 군림한다. 학생선발, 학제편성, 교과과정, 재정운용 등 대학 운영의 모든 면에 걸쳐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그 방향으로 대학을 몰고 간다. 인사, 재정, 감사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으니 교과부는 국립대학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교과부 존재이유는 대학 간섭하라고 있지 않아

얼마 전 모 국립대 총장은 8년 재임 동안 작은 인사와 행정조차 교과부 질의와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할 수 없었다고 교과부의 폭압적인 통제를 털어났다. 사립대학들이라고 교과부 압박을 덜 느끼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방법 중의 하나가 전직 교과부 고위 관료들을 총장으로 모셔 가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풍토에서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면 결국 국립대학들도 그런 유형의 총장들이 영입하려는 가능성이 적지 않다.

총장 직선제 폐지를 주장할 때는 선진국 사례를 드는 교과부가 자신을 선진국 교육부와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 어느 선진국 정부도 대학을 정부 통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굳이 외면한다. 미국에는 우리나라 교과부와 같은 부서가 중앙정부에 원래 없었다. 카터 정부 때 처음으로 교육부가 설치되었으나, 거기에는 대학정책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취업률' 같은 지표로 대학 교육성과를 측정하는 정책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주로 저소득층에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 개발이라든지, 교육 관련 각종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 명문대학들은 모두 교육부가 설치되기 오래전에 탄생했고 교육부 지시 없이 스스로 기틀을 잡았다. 아마 대한민국 정부에 '바둑부'가 있었다면, 한국 바둑이 세계 최고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공감을 얻는 게 아닐까.